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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위협하는 핵무기, 생태계를 위협하는 과학기술, 경제성장 중심의 신자유주의 등이 인간의 삶을 위협한다. 이런 현실에서 1986년 출간된 울 리히 벡의 저서 "위험사회"는 현대의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울리히 벡은 이런 위험을 초래한 과학기술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성찰적 근대화'라는 표현을 쓰며 새로운 근대로 나아가자고 한다. 근대를 반성하는 주된 원인을 과학기술이라고 보았던 그는 파괴되기 이전의 원 상태로 돌아가기 위해서도 과학기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론은 생태주의자에 의해 ‘스톡홀름 증후군’과 비슷하다는 비판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스톡홀름 증후군이란, 인질 이 인질범에게 동화되어 그에게 호의를 가지게 되는 심리를 말합니다. 이런 증후군과 비교하다니 거센 비판인 거죠. 하지만 위험사회론 의 논리 구조만 보자면, 수긍이 가기도 합니다.
생태주의자들이 보기에 과학기술은 인류를 위험에 처하게 하고 생태계를 파괴하는 적이죠. 그런데 울리히 벡은 근대 문제의 원인을 과학기술이라고 단정지으면서 생태계를 복원하기 위해 과학기술이 필요하다고 하니 모순이라는 거예요.
하지만 객관적으로 보기에 울리히 벡은 과학기술의 양면성을 파고들어 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학기술의 긍정과 부정, 두 가지 모두를 본 것이죠.
예를 들어 한강이나 낙동강이 오염되었어요. 그래서 강물을 마시는 게 불가능해졌습니다. 수질 오염의 원인을 찾아 올라가 보면 과학기술과 당연히 관련이 있겠죠? 이 오염된 물을 정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울리히 벡의 관점을 따른다면 과학기술을 이용해야 합니다. 만약 현대의 기술로 정화할 수 없다면 과학기술을 더 발전시켜서 새로운 방법을 개발해야겠죠. 비록 과학기술이 생태계를 파괴했다고 해도 그 복원에는 다시 과학기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주장입니다.
이런 울리히 벡의 주장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근본적인 생태주의자들이 볼 때엔 위험사회론 자체가 위험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성장을 중단해야 한다고 보니까요. 반면 울리히 벡의 관점이 매우 현실적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또한 기술도구주의라면 “위험사회론의 위험에는 계급성이 부재한다.”라고 말할 겁니다. 좀 더 쉽게 설명을 해 볼게요. 1992년 발표 한 ‘리우 환경 협약'이 있습니다. 여러 나라가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 모여서 환경을 보호하자는 약속을 한 것이죠. 오존층에 구멍이 뚫리고 지구 곳곳에서 이상기후가 나타난 지가 꽤 되었죠? 한국도 기후가 바뀌어서 더워지고 있다는 말도 나옵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피해는 어떤 한 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 모두가 받고 있죠. 그런데 그중에서도 개발도상국이 더 큰 피해를 입는 게 사실입니다.
이런 면에서 기술이란 지배계급과 선진국만의 도구이며 피해를 받는 것은 후진국이라는 인식을 할 수 있겠죠. 그래서 계급적 인식을 하는 쪽에서 볼 때는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론은 계급 갈등의 문제에 주목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쨌든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론은 굉장히 중요해요. 산업화나 근대화가 낳은 문제들이 크다는 것, 그리고 현실이 위험사회가 되었다는 것은 이제 분명한 것 같습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만 봐도 그렇죠. 울리히 벡은 이러한 때에 적극적인 반성과 성찰을 요청한 것이죠. 그리고 그 한 예를 과학기술이라는 자신의 문제의식을 통해 보여 준 것으로 생각하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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