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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서양 철학에서는 인간과 자연을 대립적인 관계로 보았다. 그러나 생태주의는 이런 서양 근대의 인간중심적인 자연관을 부정적으로 보았고, 경제성장과 문명 자체를 비판했다. 또한 성장론과 분배론 모두 결국 ‘성장을 통해 자연을 파괴하는 공통점'이 있다고 본다. 생태주의는 동양의 불교나 노장사상과 연결되는 면이 있다.
환경론, 환경주의라는 말을 오랫동안 썼는데 이제는 생태주의라고 부릅니다. 환경이라는 말에는 ‘주변 경관’이라는 뜻이 있죠. 그런데 '중심'이 있어야 주변도 있는 거잖아요? 그 중심이 바로 인간이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다시 말해, 환경이라는 단어에는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관점이 들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지구 환경이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고 보는 쪽에서는 환경 대신에 ‘생태’라는 말을 써요. 생태계라는 개념 속에서는 인간이 자연의 일부가 됩니다.
서양 합리론은 인간을 이성적 존재로 보고, 경험론은 감각적인 존재로 보고 있죠. 하지만 이런 철학들은 공통적으로 우주와 자연을 놓고 그 바깥에서 인간이 우주를 경험할 수 있다고 보는 겁니다. 다만 그 방법에 차이가 있을 뿐이죠.
이 시각에 대해 하이데거 같은 철학자와 해석학자들이 문제를 제기했죠. 이들은 인간은 세계의 밖으로 나갈 수 없고, 세상 안에 존재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문제 제기는 사실 동양에는 예전부터 있었어요. 동양 철학에서는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보는 ‘전일적 세계 관’이 오래전부터 존재했습니다. 전일(全一) 말 그대로 하나라는 건데요, 인간과 자연이 하나라는 의미로 볼 수 있어요. 생태주의적 세계관에 가깝겠죠.
전일적 세계관과 반대되는 것이 공리적 세계관입니다. 공리란 유용성이라고 보면 돼요. 이 세계관에 따르면 인간은 자연에서 뭔가 이익을 누리려고 하게 되죠.
성장이냐 분배냐. 이건 매우 치열하게 다뤄 온 문제입니다. 그런데 생태주의는 성장론과 분배론의 공통점이 있다고 보고 양쪽 모두를 비판합니다. 성장론을 비판하는 건 이해가 쉬운데, 분배론은 왜 비판하는 걸까요? 생각해 보세요. 무언가를 분배하려면 먼저 성장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그러니 생태주의의 문제의식에서는 ‘선 성장-후 분배'와 '선 분배-후 성장’의 논쟁은 선후 문제에 지나지 않습 니다. 둘 다 생태계를 파괴한다는 것이지요.
생태주의는 기존의 ESSD(Environmentally Sound and Sustainable Development), 즉 '환경적으로 건전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전면적으로 비판합니다. 이 용어는 정말 중요해요. 그런데 왜 생태주의가 ESSD를 비판할까요?
따지고 보면 ‘환경적으로 건전’한 것은 환경론의 관점이고, ‘지속 가능한 개발'은 성장론의 관점입니다. 세계적으로 볼 때 선진국은 환경론을 내세우고 개발도상국은 성장론을 주장합니다. 하지만 사실 지구의 환경을 파괴한 주범은 누구죠? 오존층 파괴 같은 일들은 기술과 문명이 먼저 발전했던 선진국에서 시작된 일이죠.
그런데 이제 와서 선진국들이 “전 세계가 단결해서 생태계 파괴를 막자”라고 하는 건데, 제3세계 국가들은 먹고살기도 힘든데 환경 문제에 관심을 기울일 수가 없어요. 당연히 성장론을 주장하겠죠. 이런 ‘남반구와 북반구의 갈등', 즉 후진국과 선진국 사이의 갈등을 억지로 타협시킨 것이 바로 ESSD라고 보는 거예요.
생태주의 안에도 두 가지 흐름이 있습니다. 인간중심주의 생태주의와 반인간중심주의 생태주의죠. 두 흐름 사이에는 논쟁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반인간중심주의라는 말이 좀 어렵죠? 인간이 생태 환경을 파괴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인간중심적이라고 말하는 건데요. 예를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지구에 있는 모든 핵폭탄이 어느 날 다 터져 버렸어요. 인류는 멸망할 겁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될까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어쨌든 생태계는 서서히 복원될 겁니다. 이런 사례를 본다면 과연 인간이 생태계를 파괴한다는 것이 가능한가, 인간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되죠.
또 다른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플라스틱은 썩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플라스틱도 썩습니다. 다만 썩는 데 굉장히 오래 걸리는 거죠. 원자력 발전소에서 나오는 중금속 중에는 반감기가 400년인 것들도 있다고 해요. 사람의 수명과 비교할 때는 무척 긴 시간이죠? 그런데 이것도 지구 역사의 관점에서 본다면 문제가 달라집니다. 이런 관점이 바로 반인간중심적 생태주의입니다.
이렇듯 생태주의는 과학기술을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비판합니다. 또한 인간과 자연을 분리하는 서구 근대 문명의 효용론적 사고도 비판하며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제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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