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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는 ‘변하지 않는 참된 이치'를 말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변하면서 과거의 진리가 현대에는 다르게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시공을 초월해 변하지 않는 진리를 절대적 진리라 하고, 시간과 공간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진리를 상대적 진리라고 한다. 진리를 검증하기 위한 기준, 즉 진리의 척도에 따라 대응설(일치설), 정합설, 실용설로 나뉜다.
진리 검증 이론은 무엇이 진리인지, 그리고 그것이 진리라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를 밝히고자 하는 이론입니다. 대응설은 “어떤 판단이 사실에 일치하고 그에 대응할 때 진리”라고 보는 시각입니다. 언어와 현실이 일치해야 진리라는 말이 됩니다. 이것은 일치설과 같은 원리입니다. 어떤 개념이 있으면 그것과 일치하는 것이 현실에 존재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원자’라는 단어가 있으면, 그에 해당하는 원자가 현실에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정합설은 "어떤 이론 안에 모순이 없고, 체계가 일관성을 지니고 있을 때 진리”라고 봅니다. 쉽게 말해 더 말이 되는 것, 보다 논리적이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것을 더 정합적이라고 표현하는 거예요. 정합적이란 말은 일상생활에선 잘 쓰지 않지만, 꼭 알아 둬야 하는 말입니다. 무엇에 부합해서 딱 맞아떨어진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되겠어요.
예를 들어, 창조론과 진화론 가운데 어느 쪽이 옳으냐를 놓고 종종 논쟁하게 되는데요. 이 둘 가운데에서 어떤 이론이 더 논리적으로 모순이 없으며 체계적인지를 따져 본다면 진화론 쪽이겠지요. 창조론은 논리적 설명보다는 ‘믿음’이 있을 때 진리로 받아들이게 되는 이론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 진화론이 진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정합적 방법에 입각해서 진리를 검증했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되죠.
마지막으로 실용설은 직접 실천해 봐야 진리인지를 알 수 있다고 봅니다. 실용설은 실생활에서 좋은 결과를 가져오거나 유용할 때 참 이라고 봅니다. ‘쓸모’로 진리의 여부를 판단하는 셈이죠.
이런 진리의 검증 기준 가운데에서 일치설, 대응설은 절대 진리에 해당합니다. 개념과 사실의 일치를 주장하는 이런 이론들은 상황에 따라 진리가 달라지면 안 되죠. 객관적 실재와 이론이 일치한다고 보는 것인데, 그 객관적 실재가 시대나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없으니 까요.
그러나 정합설과 실용설은 새로운 논리가 등장하면 그것이 과거의 진리를 대신할 수 있어요. 그래서 진리에 대해 상대주의적 입장이 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중세 시대에는 창조론이 진리였지만, 논리적으로 더 정합성을 가진 진화론이 나오면서 창조론은 진리의 자리를 잃었죠. 마찬가지로 미래에 진화론보다 더 합리적이며 내적 일관성이 있는 이론이 나오면 그 새로운 이론이 진리가 될 것입 니다. 마찬가지로 현실에서의 유용성을 따지는 실용설도 진리가 바뀔 수 있죠. 세상이 계속 변하니까 그 사회에서 어떤 가치가 실용적인지도 변할 수밖에 없어요.
이 세 가지 이외에 다른 이론들도 있습니다. 인식하는 사람들 사이의 합의의 결과를 진리의 기준으로 보는 상호 주관성 이론 내지는 합의설이란 것이 있는데요. 쉽게 말하자면 “학자들이 합의하면 그게 진리”라는 이야기예요. 상호 주관성은 ‘토론이성'을 강조하는 하버마스를 생각하면 됩니다. 토론과 합의를 통해 진리가 검증된다는 관점이죠. 사회학적인 의미가 강합니다.
마무리로 진리 검증 이론을 연습해 볼게요. 김춘수 시인의 <꽃>에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던 그였는데,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 내용은 진리 검증 이론 중 어느 시각에 가까울까요?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실제로 존재하게 되고 의미가 된다, 이것은 바로 이름이 현실과 대응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일치설이겠죠. 이런 식의 응용이 가능하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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