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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파괴운동은 처음 공장에 기계가 도입되던 때에 나타났다. 일자리 감소를 우려한 노동자들이 기계를 적으로 여겼던 것이다. 이 운동의 긍정적인 의미는 ‘인간이 기계의 주인임을 선언’했다는 점이다. 과학기술을 긍정적으로 본 대표적 인물인 앨빈 토플러는 그의 저서 "제3의 물결"에서 인류 문명의 단계 를 3단계로 정리했다. 제1의 물결은 신석기 시대의 농업혁명으로 이로 인해 원시사회는 농업사회로 전환했다. 제2의 물결은 공업혁명으로 농업사회를 기계제 공업사회로 바꾸었다. 제3의 물결은 정보통신혁명을 말한다. 이로 인해 정보사회가 나타났다.
인간의 특징을 표현할 때 도구적 인간 즉 호모 파베르(Homo faber)라고도 합니다. 인간이 도구를 이용해서 자연을 변형시키면서 문명이 만들어졌다고 보는 시각입니다. 이런 의미에서의 도구가 발전하면 기술이 되죠.
기술이 발전한 뿌리는 근대 과학에서 찾을 수 있어요. 그래서 ‘과학기술’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과학기술을 긍정적으로 볼 것인지, 부정적으로 볼 것인지에 관해서는 입장이 세 가지로 나뉩니다. 긍정, 부정, 가치 배제예요.
우선 과학기술이 편리함을 가져다준 건 인정하지만, 그때문에 환경과 생태계가 파괴되었고 핵무기 등이 나왔다고 보는 생태주의 등과 같은 입장에선 당연히 과학기술을 비판합니다. 반면 과학자나 기술자들은 인류의 문명을 발전시킨 과학기술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죠. 이에 더해 과학을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보지 않는 입장이 있습니다. 과학은 그냥 과학일 뿐이고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이죠. 그러니 거기에 자꾸 인간이 설정한 가치를 부여하지 말자는 것이죠. 다른 말로는 가치판단에서 벗어난 ‘탈가치적 시각'이라고 표현합니다. 앞에서 다뤘던 개념들을 떠올려 보면 실증주의와도 연결됩니다. 기계파괴운동은 내용 자체보다는 이 사례가 지니는 의미가 중요해요.
근대에 들어 공장에 기계가 도입되면서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줄어들게 되자, ‘기계가 나의 적이다.'라고 판단한 노동자들이 기계를 부순 사건이 기계파괴운동, 러다이트 운동이죠. 이 운동은 마르크스도 비판했어요. 빈부 격차의 원인을 사회구조적 모순에서 찾아야지 기술의 발전을 비판할 일이 아니라고 본 것입니다. 생산성을 높여 주는 기계를 노동자들이 장악해서 물질문명의 혜택을 받아야지 왜 기계를 파괴하느냐는 것이죠. 즉 과학기술과 사회구조를 분리해서 생각하는 가치 배제의 시각입니다.
마르크스의 비판이 아니더라도 기계파괴운동은 특정한 결과가 생기게 된 원인을 사회 전체의 구조와 연결시키지 못한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통합적인 고찰 없이 눈앞에 보이는 현상만을 문제의 근원인 것처럼 본다는 면에서 논리적 오류가 발생할 수 있어요.
하지만 기계파괴운동은 과학기술과 인간이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를 우리에게 묻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인간이 기계의 주인임을 알리는 인간성 회복의 선언이었다는 거죠. 이 운동의 긍정성과 부정성을 같이 알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기계파괴운동을 과학기술에 대한 부정적 시각, 마르크스를 가치 배제의 시각이라고 한다면 낙관적 시각을 지닌 인물로는 누가 있을까요? 잘 알려진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를 꼽을 수 있어요.
토플러가 말한 신석기혁명, 공업혁명, 정보통신혁명의 공통점이 뭘까요? 모두 다 기술이 발전하면 사회의 변화를 일으킨다는 이야기죠. 일반적으로 ‘혁명'이라 하면 대중의 동원, 봉기 등에 의해서 어떤 사회의 정치 구조와 경제 구조 등이 변화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사회혁명이에요. 하지만 그는 ‘기술혁명'을 이야기합니다.
토플러는 과학을 발전시키면 사회 갈등이 없어진다고 봤습니다. 타제석기에서 마제석기로, 즉 뗀석기에서 간석기로 바뀌는 신석기 시대 농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수렵과 채취 활동을 하며 이동하던 인류 사회가 정착 생활을 시작하죠. 정착해서 농사를 짓는게 더 힘들 수도 있는데 왜 정착했을까요? 농업의 생산성이 더 높았기 때문입니다.
공업혁명 역시 마찬가지예요.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높아졌죠. 그로 인해 빈부 격차와 사회 갈등이 발생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뒤에 일어난 정보통신혁명으로 인해 계급 갈등이 없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고 보았어요. 자본가 계급이 아니더라도 새로운 기술과 정보를 가진 사람들이 부를 얻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이 1980년에 출간되었습니다. 그런데 출간 당시에 허황된 것 같아 보였던 것들 중에 이미 현실화된 것이 많아요. 수소 전지 자동차나 원격민주주의 같은 것들입니다. 토플러의 예측들을 가장 빨리 현실로 실현시킨 사회가 한국입니다. 한국은 좁은 국토에 인구가 많고, 그런 상태에서 인터넷과 IT산업이 가장 빠른 속도로 발달했어요.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네티즌들의 힘도 상당히 커졌죠. ‘네티즌 공화국’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계급적 갈등이 없어졌느냐는 별개의 문제이지만요.
토플러의 역사관은 ‘발전’과 ‘낙관’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과학기술에 대해 무한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고요. 그의 생각은 기술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 즉 기술결정론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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