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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질을 노동이라고 보는 관점과 놀이라고 보는 관점 사이에는 근본적인 대립이 있다. 노동을 인간의 본질로 보는 입장은 노동을 통해 인간이 자기실현을 한다고 본다. 돈이 아무리 많더라도 노동을 하지 않으면 사람은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관점이다. 반면 놀이를 인간의 본질로 보는 입장 중에는 ‘유희적 존재’로서의 인간, 즉 호모 루덴스(Homo Ludens)라는 개념이 있다. 이때의 놀이는 일하지 않고 쉬는 것이 아니라, 인 간의 창조적인 자기 실현을 뜻한다.
인간의 본질을 ‘노동’으로 보는 사상가로는 헤겔이 대표적입니다. 근대 사상가들 대부분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 시각은 인간을 “자연 속에 존재하면서도 자연을 넘어설 수 있는 존재”라고 봅니다. 이때의 노동이란 끝없이 발전하는 인간의 욕망에 맞게 자연을 변형시켜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주는 것이 됩니다. 자연에 대해 정복적인 관점이고, 인간을 도구적 존재로 간주하는 시각이기도 하죠.
동물도 일을 하지만 인간의 노동은 다릅니다. 인간은 동물과는 달리 계획적으로 노동을 해요. 동물의 경우는 노동 생산물이 모두 동일합니다. 미국에 사는 꿀벌이건 한국에 사는 꿀벌이건, 종이 같다면 벌집 모양은 동일하잖아요? 그러나 사람은 저마다 노동 생산물의 형태가 다릅니다. 왜? 생각을 해서 노동을 하니까요. 인간이 이성적 존재라는 조건이 작용하는 겁니다.
로크 같은 근대 사상가들은 노동을 소유권의 근거로 보았습니다. 로크는 황무지를 개간하는 사람은 노동을 투여했기 때문에 그 땅에 대한 소유권이 있다고 했습니다. 상속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논리를 펼쳤죠. 부모가 노동한 결과인 재산을 자녀가 물려받는 것이 자연적인 권리라는 것입니다.
반면 인간을 유희적 존재로 규정하는 입장은 노동보다도 ‘놀이’를 중시합니다. 그것이 인간의 본질이라는 거예요. 이때의 놀이에는 특징이 있는데요. 첫 번째, 규칙이 있습니다. 두 번째, 그 규칙을 익히면서 사회화를 합니다. 몇십 년 전에는 별다른 장난감이 없어서 친구들끼리 몸으로 뛰노는 놀이를 많이 했어요. 놀이마다 규칙이 있었죠. 그런데 다른 지역으로 이사가서 보니, 비슷한 놀이인데 용어나 규칙이 다 달랐어요. 새로운 사회에서 새로운 규칙을 배워야 했던 것이죠. 놀이의 마지막 특징은 비현실적이라는 점입니다. 그렇기에 인간의 상상력과 창의성을 북돋워 주는 거예요. 그리고 이런 상상력이 있었기에 인류 문명이 발달할 수 있었을 테고요.
개미와 베짱이 우화 다 아시죠? 이 이야기에서 열심히 일하는 개미는 긍정적으로, 놀기만 하는 베짱이는 부정적으로 묘사됩니다. 인간이 노동하는 존재라는 관점이 반영된 우화라고 할 수 있어요.
이 우화를 다른 관점에서 보면 어떨까요? 개미가 일할 때 베짱이는 음악을 연주하죠. 창의적인 예술 행위를 하는 겁니다. 요즘 시대엔 노동의 의미가 많이 바뀌고 인간의 본질이 놀이에 있다고 보는 목소리도 커졌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이나 동양의 장자가 이런 입장에 가깝다고 볼 수 있어요. 장자는 “무하유(無何有)의 고을에서 노닌다.”라는 말을 했는데, 아무런 인위적인 것이 없는 자연 그대로의 낙원에서 아무 생각 없이 머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놀기만 하면 어떻게 먹고사느냐는 의문이 생기지 않나요? 예를 들어 음악을 해서 돈을 많이 버는 사람도 있지만 아닌 사람도 있죠. 하지만 노동을 하면 어떤 형태로든 일용할 양식을 구할 수 있잖아요. 이 부분에 대해서 독특한 시각을 하나 소개 할게요. 제로 워크(zerowork)라는 개념입니다. 제로 워크란, 말 그대로 일을 안 한다는 이야기예요. 인류 역사에서 지금까지 선조들이 너 무나 많은 노동을 해 왔기에 이 생산물을 평등하게 분배한다면 일을 거의 하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는 주장입니다. 그만큼 현 인류의 생산성이 무척 높다는 말이죠.
참 비현실적인 이야기죠? 하지만 이 이론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세계의 부를 세계 인구 수로 나눠 보면 1인당 재산이 나오겠죠. 그런데 계산을 해 보니 최소한 선진국 중간 계층 정도의 부는 나온다는 거예요.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어 가고 있는 데 말이죠. 이건 무슨 의미일까요? 그만큼 세계적으로 부의 편중이 심하다는 말이 됩니다.
적절한 노동 시간에 대한 개념도 계속 변합니다. 하루에 8시간씩 토요일까지 일하면 주 48시간이에요. 그러다 주 44시간 노동이 되 었고, 지금은 주 40시간 노동을 이야기하죠. 하루 8시간씩 주 5일 일하는 것이죠.
처음 이 얘기가 등장했을 때는 다들 말도 안 된다고 했지만 어느새 모두 익숙해졌습니다. 토요일이나 휴일에도 일하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표면적으로는 주 40시간 노동이 상식으로 자리 잡았어요. 이런 식이라면 나중에는 주 36시간, 30시간 노동도 가능해질 수 있겠죠?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나면, 1년 중에 3개월 일하고 나머지 9개월은 노는 체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바로 원시사회의 특성이에요. 지금도 원시적 특성을 유지하는 부족들은 1년에 3개월 정도만 일을 하고도 먹고살아요. 물론 부유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만족하는 수준에서 생활하는 것이죠.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전 지구적으로 볼 때 인간이 만들어 낸 부는 막대하지만, 이것이 균등하게 분배되지 않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지닌 사람들이 점차 늘고 있습니다. 이들은 이제 인간의 상상력 즉 유희적 인간의 본질을 현실화하는 삶, 진짜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자고 주장합니다.
근대의 좌파와 우파 즉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개인주의와 공동체주의는 공통적으로 인간을 노동하는 존재로 보았습니다. 인간을 놀이하는 존재로 보는 입장은 이미 근대적이고 이념적인 잣대를 벗어 버린 탈근대적인 입장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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