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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두제란 명목상 2인 이상 소수의 지도자로 구성된 회의체가 이끌어가는 정치 체계. 귀족공화제의 한 가지로 고대 로마의 삼두정치가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과두제를 구성하는 집단의 지위는 공식적으로나 실질적으로 세습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한 조직의 리더를 중심으로 그 정체가 유지되는 독재적인 공화제의 형태를 띈다. 집단 간의 통혼으로 하나의 거대한 '가족'을 형성하기도 한다.
역사는 전제정치과두정치민주정치의 순서로 확대되면서 발전해 왔다. 권력이 한 사람에게 있으면 전제정치이고, 권력이 소수 집단에게 있으면 과두정치가 된다. 민주정치는 권력이 다수의 결정에 위임된 것이다. 과두정은 어떤 소수에게 권력이 귀속되느냐에 따라 귀족정치, 군인정치, 금권정 치, 철인정치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과두(寡頭, oligarchy)는 '적은 수의 우두머리'라는 뜻이에요. 따라서 과두정치란 소수 집단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정치체제가 되겠죠. 과두정치를 긍정적으로 보는 이들은 민주주의를 비판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민주주의를 대중주의적 관점이라고 한다 면, 과두정치는 엘리트주의적 관점이라고 이해하세요. 과두정치를 아주 먼 고대 그리스의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오늘날에도 상당히 의미 있는 개념입니다.
돈이 없어 정치를 할 수 없다면 과두정치의 일종인 금권정치의 영향이 아직 남아 있는 것이겠죠. 또 오늘날의 정보 사회가 열린사회처럼 보이지만, 결국 지식과 정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있거든요. 이런 걸 지식 권력이라고 부르기도 하고요.
민주정치와 과두정치를 비교할 때 가장 먼저 겉으로 드러나는 차이는 결정권이 다수에게 있느냐, 소수에게 있느냐의 여부입니다. 하지만 이 둘 사이에는 더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민주정치는 무엇인가를 결정할 때 다수결이라는 방식을 씁니다. 사회적 안정을 중시하기 때문이지요. 사회 전체적인 측면에서 보면 다수보다는 소수가 불만을 갖는 쪽이 상대적으로 더 안정적입니다. 사회가 해체되거나 불안해질 가능성이 낮다는 뜻이에요.
고대의 아테네는 다수결이라는 민주정치 방식을 따랐습니다. 반면 스파르타는 과두정치의 일종인 군인정치의 형태를 취했습니다. 플라톤이나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시민이면서도 민주정치를 거부하고 철인정치를 주장했죠. 여기에서 철인이란 현명한 사람을 의미 합니다. 철학자라는 소수 지식 집단에게 권력을 주자는 것이죠.
그리고 민주주의가 ‘사회의 안정’을 강조한다면, 철인정치는 ‘사회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를 중시합니다. 조선 시대의 기록을 보 면, 무엇이 성리학적으로 올바른 것인지를 놓고 임금과 신하들이 토론하는 모습이 자주 발견되거든요. 권력자가 철학적 진리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조선 시대의 정치와 철인정치가 서로 통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소수결'과 '다수결' 중 무엇이 더 옳은 것 같나요? 지금 우리에겐 당연히 다수결이 옳은 것처럼 느껴집니다. 힘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이 권력을 가지고 독단적인 결정을 한다면 부당하잖아요. 그런데 소크라테스가 주장했던 철인정치는 어떤가요. 올바른 지식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학자 집단에 결정권을 위임하자는 논리 말입니다. 이것이 고대 아테네에서 끝난 이야기일까요? 아직도 소수결의 원리는 많은 영역에 남아 있어요.
예를 들어 수능 시험의 답안을 어떻게 결정하나요? 50만 명의 학생들이 다수결로 결정하는 게 아니죠. 소수의 전문가들이 결정합니 다. 또 의사가 환자를 치료할 때 관계자들과 가족들이 다 모여서 결정합니까? 의사끼리 모여서 결정하죠. 이 경우 전문적인 지식과 능력을 갖춘 엘리트 집단이 결정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건 민주적인 결정입니까, 아니면 반민주적인 결정입니 까? 뭐라 한마디로 말하기 어려워요. 물론 이런 예는 일상의 차원이긴 합니다만, 어쨌든 소수결과 다수결의 관점으로 보면 과두정치도 좀 다르게 보인다는 것이죠.
이처럼 현대 민주주의 속에서도 과두정치, 그중에서도 철인정치는 여전히 의미 있는 논쟁이에요. 또한 앞서 말했던 귀족정치, 금권 정치, 군인정치 등도 현대 민주주의 사회의 문제점을 언급할 때 자주 등장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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