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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해력_필수 배경지식

양적 공리주의와 질적 공리주의

by PalBong's 2024.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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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담과 밀은 모두 19세기 영국의 공리주의자이다. 제레미 벤담의 사상을 양적 공리주의존 스튜어트 밀의 사상을 질적 공리주의라고 부른다. 양적 공리주의는 쾌락의 양을 계산할 수 있다는 전제로 최대의 쾌락을 누리고 고통을 최소화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쾌락의 세기나 지속성 등 을 중시했다는 것이다. 이후 등장한 질적 공리주의는 이와 달리 쾌락의 질을 중시한다. 이 입장은 정신적 쾌락을 중시하며 육체적 쾌락을 하등한 것 으로 보았다.

(좌) 제러미 벤담, (우)존 스튜어트 밀

      쾌락주의hedonism 윤리설이란 쾌락이 인생의 목적이며 최고의 선이라 하여,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는 것을 도덕원리(道德原理)로 삼는 이론입니다. 그런데 쾌락만을 추구하다 보면 언젠가 이것이 중단되거나 약화되면서 불쾌한 상태가 옵니다. 쾌락은 더 강력한 자극이 지속되지 않는 한 언젠가는 강도와 빈도가 약해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쾌락의 역설’이라는 용어가 이에 기인합니다.
      윤리 교과에서는 쾌락주의의 뿌리를 고대 그리스의 에피쿠로스 학파와 헬레니즘 시대의 스토아철학에서 찾습니다. 에피쿠로스의 정신적 쾌락과 지속적 쾌락의 개념이 19세기 공리주의에 와서 각각 질적·양적 공리주의로 분화되었다고 보면 됩니다.
      공리주의는 사회 전체의 쾌락과 이익을 중시하고 결과를 중시합니다. 따라서 공익을 우선하고, 때에 따라 사익의 일부를 제한할 수 있다고 봐요. 이런 점 때문에 나중에 자유주의적인 입장에서는 공리주의를 비판합니다. 개인의 희생을 토대로 사회 전체의 이익을 추구 하는 것은 전체주의적이라고 비판하는 것입니다. 공리주의에서 소수의 이익을 부분적으로 제한할 때에 어떤 방식으로 제재할 것이냐에 따라 벤담과 밀은 견해가 다릅니다.
      양적 공리주의를 추구한 벤담은 강제적 제재를 주장했습니다. 개인이나 소수의 이익을 제한할 때 법률적·도덕적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거예요. 인간을 불신하는 쪽에 가깝겠죠. 미셸 푸코가 비판한 원형 감옥, 즉 판옵티콘을 고안한 사람이 벤담이에요. 사람들에 대한 강제적 제재를 생각했던 인물이니까 그런 설계도 가능했겠죠.
      그러나 질적 공리주의를 추구한 밀은 자율적 제재를 이야기했어요. 밀은 민주주의에서 표현의 자유에 대한 뿌리를 만든 사람입니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결합해서 나타난 것이 자유민주주의입니다. 민주주의의 두 가지 중요한 원리가 바로 자유와 평등이죠. 자유와 평등은 사실 그 원리에서 서로 상충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둘 중에서 자유를 좀 더 우월하다고 보는 것이 자유민주주의예요. 반면 자유민주주의 제도 중에서도 법률적인 제재 같은 것들은 벤담의 이론에 기초를 둘 수밖에 없습니다.
      벤담과 밀의 차이점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리주의가 지금 우리 사회에서 어떤 의미인지를 아는 게 더 중요합니다. 공리주의는 오늘날 사회정책의 근간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현실적인 가치가 크거든요.
      현대사회에서 공리주의 원리를 고민하게 하는 사례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카파라치'가 무엇인지 아세요? 카파라치는 운전을 할 때 위법을 저지르는 사람들을 전문적으로 찍어 신고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경찰관이 아닌 사람이 교통법규를 위반한 차들을 찍어 경찰에게 제출하면 상금을 주는 정책이 시행된 적이 있었어요. 그 결과 카파라치들이 많이 생겨났죠. 이 정책을 공리주의적 시각으로는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카파라치가 생기고 나서 위반 행위와 사고 발생이 줄었습니다. 공리주의의 결과주의적 관점에서 본다면 긍정적인 측면이 되겠죠? 이 정책을 시행한 결과 공익이 달성됩니다. 교통사고가 줄어들면서 사회 전체의 인명이나 재산이 안전하게 지켜지기 때문이죠.
      그런데 카파라치들이 돈을 벌기 위해 선을 넘는 행동을 많이 했어요. 마치 함정수사를 하듯 사진을 찍기 위한 집을 빌려 놓고는 거기에서 계속 수 십 수백 명의 위법 장면을 찍어 엄청난 돈을 벌었죠. 어떤 사람은 출근할 때와 퇴근할 때 하루에 두 번씩도 찍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몰래 찍는 적발은 위법이에요. 사진을 찍히는 입장에서 보면 개인의 이익이 제약을 받은 것이죠.
      당시 카파라치 한 사람이 텔레비전 토론회에 나온 적이 있었어요. 모자를 푹 눌러쓴 채 선글라스에 마스크까지 착용하고 나와서 자신은 돈을 벌기 위해서 한 것이 아니라 공익을 위해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아무도 믿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경찰이 카파라치에 대한 보상금을 없애니까 카파라치들이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이에요. 이런 부분에서 쾌락주의 원칙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카파라치들은 철저히 자신들의 이익과 쾌락을 위해 행동했으니까요. 이만큼 우리 생활 속에서 공리주의의 원칙은  어디서나 흔히 찾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