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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리주의는 유용성을 의미하는 utility에서 비롯되었는데 말 그대로 유용성과 효용성을 중시하는 개념이다. 18세기에 개인주의가 등장한 이후 19세기에는 개인주의가 심화하여 빈부 격차가 심해졌다. 공리주의는 이런 사회의 불안을 봉합하고 사회혁명을 예방하기 위해 등장했는데, 쾌락주의와 자유주의에 뿌리를 두면서도 그것에 변형을 가하여 복지 정책의 기초를 마련하는 데에 이바지하기도 했다.
18세기 영국은 경제적으로는 산업혁명, 사회적으로는 시민혁명을 통해 근대적 시민사회를 수립했습니다. 19세기가 되자 영국은 해외 식민지 정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면서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리게 되죠. 영국의 식민지가 아프리카부터 아시아, 오세아니아, 아메리카 등에 걸쳐 있었으니 하루 24시간 내내 영국 땅 어딘가에는 해가 떠 있다는 얘기예요. 하지만 이런 칭호는 사실 불명예스러운 것이죠. 그만큼 많은 식민지를 수탈했다는 뜻이니까요.
어쨌든 이러한 대외적 팽창에도 불구하고 19세기 영국 사회는 내부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많았습니다. 19세기에는 개인주의가 심화하여 빈부 격차가 심해졌다고 했죠? 또한 1830~40년대에 걸쳐 차티스트운동이 치열하게 진행되었습니다. 불평등한 선거법을 개정하기 위한 투쟁이었죠. 영국은 1920년대에 와서야 남녀를 불문하고 모든 시민이 1인 1표를 갖는 보통선거권을 가지게 됩니다. 근대 이후 개인의 개념이 생긴 것을 생각해 봤을 때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린 셈이죠.
이렇게 빈부 격차와 선거권 투쟁 등으로 사회가 혼란한 시기에 공리주의가 등장합니다. 공리주의는 사회 혼란 극복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달리 말해 사회적 불안을 해소하며 사회주의 혁명을 막기 위해 등장한 측면이 있다는 뜻이에요. 19세기 당시는 자유주의가 지배적이었지만 사회주의도 세력이 강했거든요. 이런 혼란기에 부르주아 계급이 프롤레타리아와 이익을 나누어야만 사회주의 혁명을 막아 기존의 재산 질서를 지키고 사회를 안정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 겁니다. 이런 맥락에서 최초로 복지국가의 이념적 기초를 마 련한 게 공리주의입니다.
공리功利, 公利라는 단어는 영어로는 유용성을 뜻하고, 한자로는 사회적 이익을 뜻합니다. 공리주의는 사실상 쾌락주의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인간을 이성보다는 ‘효용’과 ‘쾌락’의 측면에서 바라보고 있죠. 인간에 대한 관점 면에서는 애덤 스미스의 인간관을 그대로 계승한다고 볼 수 있어요.
하지만 애덤 스미스의 인간관을 계승하면서도, 공리주의는 한계효용설에 기초해 인간의 욕망이 무한하지 않다는 전제를 둡니다. 쾌락과 효용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죠.
공리주의는 사회 갈등이 지속되면 누구도 이익을 볼 수 없음을 중시했어요. 그래서 공리주의의 가장 유명한 구호가 바로 벤담이 말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죠. 사회적 효용성을 강조하는 슬로건입니다.
공리주의 안에서도 “사익과 공익을 조화시킨다”라는 견해와 “공익을 우선하기 위해 사익의 일부를 제한한다”라는 두 가지 시각으로 나뉩니다. 사익을 제한한다는 것은 개인의 희생을 전제한다는 것이죠. 여기에서 사회를 위한 개인의 희생을 강제할 것인가, 자율적으로 해야 하는가에 대해 견해 차이가 발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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